속여야 하는 버려진 자…그를 불쌍히 여기는 네오프톨레모스

입력 2019-03-15 17:23  

소포클레스와 민주주의
배철현의 그리스 비극 읽기 (44) 연민(憐憫)



30만 년 전 아프리카 북부에 처음 등장한 현생 인류의 조상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는 무수한 시행착오를 거쳐 한 가지 최적화된 생존전략을 습득했다. 그것은 찰스 다윈의 ‘약육강식과 적자생존’도 아니고 니콜로 마키아벨리나 손자가 말하는 ‘지피지기(知彼知己)면 백전불태(百戰不殆)’라는 ‘승리주의’도 아니다. 이 세속적인 전략은 호모사피엔스와의 대결에서 완패해 기원전 2만8000년 스페인의 한 동굴에 마지막으로 흔적을 남기고 사라진 네안데르탈인의 처세술이다.

호모사피엔스의 전략은 다름 아닌 ‘연민(憐憫)’이다. 그들은 연민을 통해 가족이란 기본 단위를 만들고, 그것을 확장해 마을과 도시를 건설했다. 도시문명과 문화는 모든 타인과의 관계에서 숙고와 배려가 담긴 연민 없이는 불가능하다.

인류의 혁신

호모사피엔스의 이전 조상들은 오래전 도구를 발명하고 불을 우연히 채취했다. 다른 유인원들은 어디서나 볼 수 있는 돌을 쓸데없는 물건으로 봤다. 그러나 현생 인류는 거친 돌 속에서 자신의 손에 잡혀 식물을 캐거나 사냥한 동물의 가죽을 손쉽게 벗길 수 있는 유용한 손도끼를 상상했다. 고고학자들이 오늘날 동아프리카에서 발굴한 정교하고 대칭적이며 끝이 날카로운 손도끼는 단순한 작업으로 만든 물건이 아니라 고도의 상상력과 인내력, 숙련된 기술을 요구하는 예술품이었다. 손도끼 하나를 만드는 데 100시간 이상의 노력이 필요했다. 자연을 거슬러 인위적인 도구를 만들었다. 유인원이 인간으로 진화하는 첫 발걸음을 내디딘 것이다.

다른 유인원들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번개와 번개가 일으킨 불을 무서워하며 피했다. 그들은 불을 자신의 몸에 난 털과 살을 태워 목숨을 앗아갈 금기(禁忌)로 여겼다. 금기는 혁신의 신호다. 인류의 조상만이 이 위험한 불 속에서 자신의 삶을 근본적으로 개조할 마술을 봤다. 그들은 불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불에 다가가 채집했다. 자신들이 어렵게 사냥한 동물들을 당시 ‘스위스 나이프’와 같은 손도끼로 정교하게 자른 뒤, 불에 구워 먹기 시작했다. 그들이 생고기를 먹기 위해 필요했던 날카로운 이빨들이 줄어들기 시작했다. 송곳니는 불을 발견하기 전 인류 조상들의 식생활 습관이 남긴 흔적이다. 내장의 길이도 줄어들면서 신체의 다른 곳이 커지기 시작했다. 호모사피엔스의 뇌도 점점 커졌다.

혁신의 핵심, 연민

인류의 이족보행, 도구와 불의 발명으로 출산은 점점 목숨을 건 모험이 됐다. 인류의 어머니들은 이족보행으로 골반이 점점 좁아졌다. 반대로 태아의 뇌는 점점 커졌다. 유일한 방안은 태아가 어머니의 산도를 통과할 수 있도록 미성숙한 상태로 태어나는 것이다. 아이는 눈도 뜨지 못하고 걷지도 못하는 취약한 상태로 세상에 나온다. 망아지는 태어난 뒤 30분 만에 걷기 시작하고, 원숭이도 수개월 만에 걷기 시작한다. 인간의 아기는 걷기까지 약 1년이 걸린다. 인류는 이 취약한 상태를 자신의 운명을 결정할 최고의 기회로 둔갑시켰다.

어머니는 태어난 아이의 생존을 위해 모든 것을 헌신한다. 어머니는 1년 동안 거의 뜬눈으로 아이의 건강을 위해 애쓴다. 어머니의 아이에 대한 관심과 사랑은 일생 동안 지속된다. 이 관심과 사랑의 표현이 ‘교육(敎育)’이다. 교육이 동물 상태의 인간을 만물의 영장, 신의 대리자로 변모시켰다. 어린아이는 태어나자마자 누군가에게 무조건 의존한다. 그 누군가가 없다면, 아이는 하루를 넘기지 못할 것이다. 아이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건강을 해치면서까지 돌보는 어머니를 보며 알게 된다. 인간은 자신의 생존 비밀이 어머니라는 존재가 행동으로 보여준 ‘사랑’이란 점을 배운다.

네오프톨레모스의 갈등

아킬레우스의 아들 네오프톨레모스는 불쌍하게 버려진 필록테테스의 활과 화살을 빼앗기 위해 ‘경계의 섬’인 렘노스로 왔다. 그는 자신이 그 불쌍한 자를 속여야 한다는 게 편하지 않다. 그리스 연합군이 트로이를 함락시키기 위해 자신이 필록테테스를 거짓말로 속여야 한다는 요구는 네오프톨레모스에 대한 인격모독이다. 오디세우스는 네오프톨레모스에게 ‘거짓말’과 ‘계략’은 다르다고 설명한다.

‘계략’을 의미하는 그리스 단어 ‘돌로스’는 단순한 말이 아니라 거짓행동으로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려는 속임수다. 오디세우스는 인생의 가장 중요한 기술은 ‘행동’이 아니라 ‘말’이라고 주장한다(99행). 그의 주장은 당시 그리스 문화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를 표현한다. 하지만 네오프톨레모스는 아직도 그의 아버지 아킬레우스처럼 전쟁에서 승리를 가져오는 용감한 행위를 최고의 가치로 여긴다.

‘행위’를 의미하는 그리스 단어 ‘에르곤(ergon)’은 생각과 말의 결과다. 그러나 오디세우스는 ‘말’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말’을 의미하는 그리스 단어 ‘로고스(logos)’는 그리스 아테네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이 주도해 이제 막 시작할 ‘철학’의 도래를 선포하는 말이다. 소포클레스가 살았던 당시 아테네 사회는 고상한 말이 모든 것을 지배하던 시대였다. ‘말’은 자신이 원하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거짓말’이 될 수도 있다.

네오프톨레모스는 오디세우스의 약속대로 ‘지혜’와 ‘용감’이라는 명성을 얻게 된다면, 거짓말을 해도 무관하다고 스스로를 설득한다. 오디세우스는 네오프톨레모스의 선택을 칭송하며 “교활한 호송자의 신인 헤르메스와 승리의 여신인 아테나가 (그들을) 안전하게 필록테테스가 있는 동굴로 인도할 것”이라고 말한다. 헤르메스는 신의 뜻을 인간에게 전달하는 말의 신이다. 그의 별칭은 그리스어로 ‘딜리오스(dilios)’, 즉 ‘교활’이다. 자신의 이익을 극대화하기 위해 상대방을 속이는 신이다. 헤르메스는 당시 ‘상인, 도둑, 그리고 사기꾼’의 신이었다. ‘헤르메스를 위한 호메로스의 찬양시’의 266~277행에 의하면 헤르메스는 이복형제 아폴로의 양을 훔치고는 시치미를 뗄 정도로 뻔뻔하다. 아테나 여신은 원래 지혜의 여신이었으나 이 당시에는 아테네 도시의 안녕을 관장하는 여신이 됐다. 아테네인들은 기원전 421년 아테네가 페르시아를 물리친 살라미스 전투를 기념해 아테네 아크로폴리스로 들어가는 입구 남서쪽에 우아한 이오니아식 신전을 건축했다.

네오프톨레모스의 연민

네오프톨레모스는 부하들을 이끌고 필록테테스가 사는 동굴로 향한다. 부하들은 비극 작품에서 합창대로 등장해 말을 주고받는다. 그들은 주인이며 왕인 네오프톨레모스가 시키는 모든 일을 수행할 참이다. 부하들은 묻는다. “왕이시여, 우리는 무엇보다 당신의 이익을 위해 두 눈으로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겠습니다.”(150~152행) 그들은 왕에게 필록테테스가 어디에 살고 있는지 묻는다. 네오프톨레모스는 “그 집은 양쪽으로 문이 나 있다”고 말한다. 필록테테스의 동굴은 앞뒤가 뚫려 있는 구조다. 북쪽 입구는 인간들의 출입문이며, 남쪽 입구는 신의 출입을 위한 공간이다.

그들이 도착했을 때 동굴에는 아무런 인기척이 없었다. 네오프톨레모스는 필록테테스의 처지를 상상한다. “분명히 먹을거리를 구하려고 아픈 다리를 질질 끌며 이 근처를 다니고 있겠지. 소문에 의하면 증오에 찬 삶을 살면서 날개 달린 화살로 짐승을 사냥하며 연명한다고 들었지.”(163~166행) 그런 후, 그의 비참한 삶에 대한 이유를 설명한다. “그것은 아무도 그의 어려운 불행을 치유하기 위해 가까이 오지 않기 때문이다.”(167~168행) 네오프톨레모스는 필록테테스의 비참한 일상뿐만 아니라 그가 그런 삶을 사는 이유까지 상상해 설명한다. 연민의 시작은 상대방의 처지를 역지사지(易地思之)하는 상상력에서 출발한다.

합창대는 한탄하며 노래한다. “아, 지금 생각해보니 나는 그 사람에게 연민의 정을 금할 수가 없다. 아무도 그를 돌보는 사람이 없고, 어떤 친구의 얼굴도 볼 수 없다. 그는 영원히 홀로 고통을 받는구나. 그는 몹쓸 병을 앓으며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마다 당황했겠구나!”(169~176행)

소포클레스는 ‘연민의 정을 느끼다’라는 동사로 아리스토텔레스가 《시학》에 쓴 일반적인 그리스 단어 ‘엘레오(eleo)’를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아이크테이로(aikteireo)’라는 그리스 단어를 쓴다. 이 단어는 내가 상상하거나 목격한 상대방의 처지가 너무 비참해 말문이 막힌 상태를 묘사하는 감탄사 ‘오이(oi)’에서 왔다. ‘오이’는 그리스 비극에서 ‘아, 슬프도다!’라는 감탄사로 종종 등장한다. 이 단어는 심한 병에 걸린 아이를 바라보는 어머니의 심정과 감정을 드러내는 감탄사다. 고대 히브리어에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을 의미하는 ‘라하밈(rahamim)’은 자궁을 의미하는 ‘레헴(rehem)’에서 파생된 명사다. 네오프톨레모스와 그의 부하들은 그들이 속이려 하는 대상인 필록테테스의 처지를 생각하며 연민을 느낀다. 이들은 저 멀리서 기어서 동굴로 오고 있는 필록테테스의 고통스러워하는 목소리를 듣는다.

배철현 < 작가·고전문헌학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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